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만 있으면, 삶이란 기다림만 배우면 반은 안 것이나 다름없다는데. (...)
우리는 태어나서부터 뭔가를 기다리지. 받아들이기 위해서 죽음까지 기다리지. 떠날 땐 돌아오기를, 오늘은 내일을, 넘어져서는 일어나기를,
나를 너를.
- 신경숙 <깊은 슬픔>

사고처럼 생겨난 이 마음은 언제 어디서 온걸까?
프랭크 오하라의 점심 시집을 사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쳐 지하철을 타고 강남에 간 날이 있다. 그 책은 근방엔 거기에만 팔고 있어서,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며칠 기다리는 것 조차 하고싶지 않아 곧장 옷을 입고 집을 나섰던 날.
그 애를 이해하고 싶어져서, 그게 그 사람의 아주 지극한 일부 정도밖엔 구성하지 않을거란걸 알면서도 그랬다.


“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사랑은 없다.”
나는 체호프식의 아이러니한 사랑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, 사랑의 급진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.
그 시집을 굳이 찾아서 사읽고 뇌리에 새기는 사소한 행위가 나를 단숨에 사랑의 주체로 만들어버릴 것임을 알면서도 그랬다.
물론 그 이후 이어져온 복잡다단한 상호작용(우리의 인터랙션은 대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)이 비로소 내 영혼을 흔드는 태풍이 된 것이지만, 그 태풍의 눈은 겨우 이 사소한 행위에서 시작된 것임이 틀림없다.
줄곧 물 속에 잠긴듯 옴짝달싹 못하던 내 머리 위로 그 애는 -자기 이름처럼 타고난듯이- 그리 어렵지도 않게 빛을 비춰주었다.
사랑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태어난 결함이나 자라며 형성되어버린 불구의 구석을 메꾸어주진 못하더라도,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북극성이 될 수는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.
이 사랑이 진짜가 될 수 있을까?
나는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긴 기다림을 감수할 결심을 했다. 어떤 더 촌스러운 수식어를 이 결심에 붙여볼 수 있겠지만 굳이 적지 않고 이 문장 하나를 남긴다.
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...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
(corinthians 13:4-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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